Skip Navigation
Skip to contents

Newsletter No.20 2023 May

People and Story - 그 놈의 정 때문에

조경기 교수 (차의과대 분당차병원)

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곤 하는데, 뇌종양학회 e-News letter를 통해 나의 산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부탁을 또 받게 되었다. 산을 다닌 지 50여년이 되었으니, 이쯤 되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의사보다도 산악인으로 여기는 것 같다. 장시간 수술이 많고 강의 준비와 임상, 연구 때문에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내가 왜 이렇게도 한 주도 빠트리지 않고 산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반문해보며, 또 산과의 인연을 되돌아보려 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틈만 나면 삼청동 뒷산 범바위에 오르기를 좋아했던 나는,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의대 산악부를 따라 산을 오르게 된 이후 지금까지 산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아마도 백두산 바로 아래 혜산진에서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산 기운을 내가 물려받았나 보다. 대학 6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산에 올랐으며 힘든 신경외과 전공의 수련과정에서도 당직만 아니면 산을 찾았다. 전공의 1년차 때였나 보다. 당직을 마치고 토요일과 일요일 오프를 받아서 새벽에 배낭을 메고 오대산으로 향했다. 전날 당직으로 거의 비몽사몽한 상태서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오후 2시쯤 정상에 올라 잠시 쉬다가 잠이 들어 깨어나니 깜깜한 저녁이었다. 헤드 랜턴도 없이 올랐기에 동서남북을 구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산하다가 방향을 잘못 잡아 결국 정반대 방향으로 내려가서 길을 잃어버렸다. 밤새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산속에서 헤매다가 갑자기 개 짖는 소리를 들었는데, 개 짖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내려가서 마을에 도착해 조난을 모면한 경험도 있다.

전문의가 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틈만 나면 산을 오르며 암벽과 빙벽 타기를 즐기고 있다.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로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산은 나에게는 중요한 정신적 안식처이다. 뇌종양을 전공하는 나는 유달리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들을 많이 대하고 그들의 질병과 수술실에서 피 흘리며 장시간 싸움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산에 찾아가면 산은 늘 변함없이 나를 포근하게 맞아준다.

[북한산 인수봉 귀바위 등정]

흔히들 왜 그렇게 땀 흘리며 힘들게 산을 오르는가 하는 질문에 1924년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조난당한 등산가 조지 말로리 (George Mallory)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한 것은 지금까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멋진 어록으로 기억되어지고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일순간에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과연 등산이란 미명 하에 용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 논란의 여지도 있다. 산악인들에게는 '욕심은 금물'이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내려져오고 있다. 특히 위험한 산일수록 욕심을 부리다 자칫 한 순간에 비명횡사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 '욕심'이야말로 산악인들로 하여금 산을 오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 고난도의 위험한 K2 산을 셀파도 없이 유서를 베이스 캠프에 남기고 단독으로 7500m까지 올랐던 일, 죽음의 공포와 맞싸우며 엘캐피탄 거벽을 올라 정상에 섰던 일. 그 후 무려 8년이 지난 작년에 다시 엘캐피탄을 오르다가 5일째 죽음의 탈출을 해야만 했지만, 그 후에도 지금도 꾸준히 산을 찾는다. 왜 나는 이런 무지막한 산행을 계속 하는 것일까? 단순한 성취욕 때문일까?

[엘캐피탄 등정]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간 내가 오르고 싶은 산의 정상을 향해 계속 도전해 왔고 그 산을 오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젊은 시절에는 어려운 암벽 코스를 힘들게 오르면서 어렵게 상황을 극복하고 정상을 정복했을 때의 짜릿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선후배간의 규율이 엄격한 단체 생활을 하면서 단체를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을 배울 수가 있어서 좋았고, 아울러 악우(岳友)들과 생명 줄인 자일에 서로를 맡긴 채 암벽을 타고 있노라면 서로가 마음이 하나가 되어 형제애보다도 더 진한 우정을 가슴속까지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생각도 변하는 거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었을 때처럼 난이도가 높은 암벽에 대한 정복의 성취감은 가지지 못하지만 살아서 같이 산행에 나서는 친구들을 만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이들은 그저 친구들이 좋고 산이 좋아 늘 같이 어울려 산을 즐긴다. 나이, 학력, 직업 및 성격이나 삶의 방식은 각양각색이나, 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신보다는 늘 남을 먼저 생각해 주는 마음이 몸에 배어 있으며 넉넉한 여유로움도 갖고 있다. 한편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평범하나, 마음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죽음의 산 K2 등정 그리고 유럽 최고봉 Elbrus 등정]

"그 놈의 정 때문에……." 아마도 그 놈의 정 때문에 산의 끈을 놓지 못하고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유난히 '정(情)'이 많다. "산이나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 사이에는 형제애보다 진한 끈끈한 정이 흐른다. 위험천만한 등정 길에서 자일을 통해 서로와 서로가 연결돼 있으며, 같이 산을 오르는 상대방에게 나의 생명을 맡긴다. 나에겐 '산'은 삶의 일부분이다. 밤에 암벽을 오르는 '야바위'나 험난한 바위산 등정을 즐기지만, 평소에도 늘 산은 가까이에 있다. 그러기에 어디를 가든 배낭과 신발을 갖고 다니며,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다가도 '달이 참 밝구나' 싶으면 그 길로 집 앞 광교산을 오른다. 지금은 산을 잠시 떠나 있지만 산은 늘 나에게 손짓하며 오라하고 난 그를 바라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일 뿐이다.

Copyright(C) The Korean Brain Tumor Society. All Rights Reserved.

06631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50 (서초동, 서초동동아빌라트) 2타운 407호